이야기테크/한자이야기

[스크랩] 陽貨第十七 - 13.14.15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1. 28. 20:50

17-13-1 子曰 鄕德之賊也

        鄕者 鄙俗之意 愿 與愿同 荀子原慤 註 讀作愿 是也 鄕原 鄕人之愿者也 蓋其同流合汚 以媚於世 故 在鄕人之中 獨以愿稱 夫子以其似德非德 而反亂乎德 故 以爲德之賊而深惡之 詳見孟子末篇

 

子曰鄕(자왈향원)은 : 공자 말씀하시기를, “시골에서

 德之賊也(덕지적야)니라 : 근후한 체하는 것은 덕을 해치는 것이다.”고 하셨다.

 

 삼가할 원.㉠삼가하다 착하다 성실하다. 鄙俗(비속)천하고 속된 것. 성실할 각.㉠성실하다 거짓이 없고 정성스럽다. 읽을 독. 지을 작.㉠짓다 만들다 일하다 일어나다 일으키다 농사. 鄕人같은 고향(故鄕) 사람.同流 ①물의 같은 흐름 ②같은 유파() ③같은 유풍() ④동배().  더러울 오.㉠더럽다 더럽히다 낮다 빨다 굽히다 괸물 파다 (와).괸물 오. 낮다.더럽다.파다(와)  . 아첨할 미.㉠아첨하다 예쁘다 아양을 떨다 아름답다 사랑하다 요염하다 좇다 아첨 아양 요괴 천천히. 닮을 사.㉠닮다 같다 비슷하다 흉내내다 잇다 상속하다 보이다.

 子曰:  「鄕原, 德之賊也. 」 鄕者, 鄙俗之意. 原, 與愿同. 荀子原吳, 注讀作愿是也. 鄕原, 鄕人之愿者也. 蓋其同流合汙以媚於世, 故在鄕人之中, 獨以愿稱. 夫子以其似德非德, 而反亂乎德, 故以爲德之賊而深惡之. 詳見孟子末篇.  

 

17-14-1 子曰 道聽而塗說 德之棄也

        雖聞善言 不爲己有 是自棄其德也 ○ 王氏曰 君子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 道聽塗說 則棄之矣

 

子曰道聽而塗說(자왈도청이도설)이면 : 공자 말씀하시기를,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은

 德之棄也(덕지기야)니라 : 덕을 버리는 것이다.”고 하셨다.

  칠할 도.㉠칠하다 진흙 매흙질하다 지우다 더럽히다 괴로움.

 

子曰:  「道聽而塗說, 德之棄也. 」  雖聞善言, 不爲己有, 是自棄其德也. ○王氏曰:  「君子多識前言往行以畜其德, 道聽塗說, 則棄之矣. 」   

 

17-15-1 子曰 鄙夫 可與事君也與哉

        鄙夫 庸惡陋劣之稱

 

子曰鄙夫(자왈비부)는 : 공자 말씀하시기를, “비루한 사람과

 可與事君也與哉(가여사군야여재)아 : 더불어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느냐

떳떳할 용.㉠떳떳하다 쓰다 어리석다 범상하다 평소 공적 수고 어찌 .더러울 비.㉠더럽다 추하다 좁다 작다 거칠다 낮다 못할 열.㉠못하다 졸렬하다 용렬하다 힘이 모자라다 겨우

 

17-15-2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何氏曰 患得之 謂患不能得之

 

其未得之也(기미득지야)에는 : 벼슬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患得之(환득지)하고 : 얻기를 근심하고

旣得之(기득지)하여는 : 이미 얻어서는

患失之(환실지)하나니 : 잃을까 근심하니

 

17-15-3 苟患失之 無所不至矣

 

苟患失之(구환실지)면 : 진실로 잃을까 근심하는 자라면

無所不至矣(무소불지의)니라 :

 의에 벗어난 어떤 일이라도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고 하셨다.

 

        小則윤癰지痔 大則弑父與君 皆生於患失而已 ○ 胡氏曰 許昌근裁之有言曰 士之品 大槪有三 志於道德者 功名 不足以累其心 志於功名者 富貴不足以累其心 志於富貴而已者 則亦無所不至矣 志於富貴 卽孔子所謂鄙夫也

吮癰 : 吮癰舐痔(연옹지치) (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 앓는 밑을 핥는다는 뜻으로)남에게 너무 지나치게 아첨함을 이르는 말.여러누.㉠여러 자주 묶다 거듭하다 포개다 폐끼치다 더럽히다 연하다 연루 폐, 누 연좌 벌거벗다 (라) 땅 이름 (렵).功名 ①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 ②공적(功績)과 명예(名譽) ③공을 세운 이름. 

 

子曰:  「鄙夫可與事君也與哉?  與, 平聲. ○鄙夫, 庸惡陋劣之稱.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何氏曰:  「患得之, 謂患不能得之. 」

 

 苟患失之, 無所不至矣. 」 小則吮癰舐痔, 大則弑父與君, 皆生於患失而已. ○胡氏曰:  「許昌靳裁之有言曰:  󰡔士之品大槪有三: 志於道德者, 功名不足以累其心; 志於功名者, 富貴不足以累其心; 志於富貴而已者, 則亦無所不至矣. 󰡕 志於富貴, 卽孔子所謂鄙夫也. 」

 

 吮 빨 연.㉠빨다 핥다 입으로 빨거나 핥다 . 악창 옹. 핣을 지. 치질 치.

吮疽之仁(연저지인) (주()나라의 오 기란 장수()가 자기() 부하 군사()의 종기()를 빨아서 고쳤다는 옛 일에서)장군()이 부하를 지극히 사랑함을 이르는 말 .사기.

 

鄕愿 수령()을 속이고 양민()에게 폐해()를 입히던 촌락()의 토호(). 함부로 토목() 사업()을 일으켜 백성()에게 폐해()를 끼치거나, 환곡()을 중간()에서 착복()하여 백성()에게 그 혜택()이 미치지 못하게 하거나, 정수() 이외()의 공물()을 착복()하거나 촌민()을 불러 모아 수시로 사냥을 하여 농사()를 방해()하는 등의 일을 하던 자를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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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골호인(無骨好人) --------------------☆

줏대가 없이 두루 뭉실하여 남의 비위(脾胃)에 다 맞는 사람. 무골호인의 사전적 정의는 이것이다.
줏대란 주(主)가 되는 뼈의 뜻이자, 문지도리인 중추(中樞)의 동의어(同義語)이다.
문지도리가 없으면 문을 열고 닫을 수 없고, 사람의 몸에 주가 되는 뼈가 없으면 바로 설 수 없으니,
연체동물(軟體動物)마냥 흐물흐물할 따름이다.
이런 인간은 시비(是非)나 호오(好惡) 판단은커녕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그저 이리 붙었다 저리 붙기를 밥 먹듯이 한다.

맹자·진심하(盡心下)」에 따르면,
공자가 광(狂: 성격이 구애됨이 없이 제멋대로인 사람)과 견(성격이 급하고 강직한 사람)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다음 이어서 향원(鄕原)에 대해 말하길,

“내 집 앞을 지나면서도 내 방에 들르지 않아도 불만이 없는 이는 오직 향원뿐이다.
향원은 도덕을 해치는 이이다(德之賊也)”라고 하였다.
이에 제자인 만장(萬章)이 도대체 왜 향원이 도덕을 해치는 이인가에 대해 묻자 맹자가 이렇게 말했다.

“비방하고자 해도 들 것이 없고, 풍자하고자 해도 풍자할 것이 없어
유속(流俗: 풍속이 피폐하여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으며,
더러운 세속(汚俗)에 합쳐서 거함에 충성스러운 듯하고, 행함에 청렴하고 결백한 듯하여 무리들이

모두 기뻐하지만 스스로 옳다고 여겨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덕을 해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희는 여기에 나오는 ‘향원’에 대해 무식한 자라고 주를 달았는데,
양백준(楊伯峻)은 「맹자역주」에서 호호선생(好好先生), 즉 무골호인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필자 역시 무골호인의 뜻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향원은 세속과 더불어 세속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맞추니 굳이 꼬집어서 비판할 것도 없고,
게다가 세속의 모든 이들이 죄다 좋아하니 그야말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인간의 전형(典型)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가 어찌 내심의 수양과 학식을 겸비하여 원대한 이상을 꿈꿀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공자왈(孔子曰), ‘요순의 도’, 즉 원대한 이상을 방해하여 덕을 해칠 자라 하신 것이다.

이상(理想)이 없으면 줏대가 없기 마련이고, 자신의 포부(抱負)에 자신(自信)이 없으면 세속에 묻히게 된다. 이러한 이가 바로 무골호인, 즉 호호선생이다.
원래 ‘호호선생’이란 한대 말엽 사람인 사마휘(司馬徽)의 별명이다.
그의 「별전(別傳)」에 따르면, 사람들이 그에게 인물 품평을 요청할 때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저 ‘가(佳: 좋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래서 참다못한 그의 부인이 품평을 하려면 마땅히 논변(論辨)을 거쳐야하거늘 무조건 좋다고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왈(曰), “그대의 말 또한 좋소이다.”

 

...............

 

공자는“"향원은 덕의 적이다.”"(鄕原, 德之賊也.논어17,13)하여 향원을 경계(警戒)해야 할 모형(模型)

으로 제시(提示)하였다.

맹자(孟子)는 향원을
1. 말과 행위가 서로맞지 않고,

2. 옛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도 행실은 차갑기만 하고,
3. 은연중에 세상에 아첨하는 자임을 지적하고,

또향원이덕을해치는이유로
첫 째 비난하거나 풍자하려 해도 말할 거리가 없는데, 세속의 흐름에 동조하고 혼탁한 세상과 결합하며,
둘 째로는 머물 때는 충신한 것같고 행동하는 것은 청념(淸念)한 것 같아 모두가 기뻐하는데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는 사실을 들고있다.(맹자14, 37)

여기서 요한 다산 정약용선생은 향원에 대한 맹자 의 설명을 한폭(幅)의 생동(生動)하는 그림 같다고

칭송 하면서, 그 자신 향원의 인물(人物)됨을 규정(規正)하고 있다.

내가“향원"의학문이란것을살펴보니,


1.시비와 흑백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세속(世俗) 의 추세(趨勢)로 위주(爲主)를 삼아서,

옳은 줄 을 분명히 알면서 대중이 아니라고 하면 따라서 아니 라고 하고,

검은 줄을 분명히 알면서도 대 중이 희다고 하면 따라서 희다고 한다.

2.경전을 말할 때 선성을 본받지않고 오직주석을높이며, 예를 논할 때는 바른 제도를 구하지 않고
오직 시속을 따르며, 새로운 해석(解釋)을 들었을 때 비웃으며, 스스 로 정통(正統)에 머문다고
하지만 방류로 흘러 간다.

3. 작은 직책을 주면 사양하여 겉으로는 겸손한듯 보이지만 그 뜻은 큰 직책(職責)을 얻으려는데
있으니, 그 행사(行事)를 살펴보면 별다른 트집을 잡을 것이 없지만 그 심술을 관찰(觀察)하면 더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학행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다산이 규정하는 "향원’'의 학문(學問)과 행동(行動)양상(樣相)은
대체로 네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시비(是非)의 판단기준(判斷基準)에서 확고(確固)한 원칙(原則)이나 신념(信念)없이
세속(世俗)과 대중(大衆)에 영합(迎合)하는 것 이 고,

두 번째는 경학(經學)이나 예학(禮學)에서도 선성(善性)의 원형(原形)을 찾아가지 않고 주석(註釋)에
얽매이고 시류(時流)와 세속(世俗)에 영합 하면서 새로운 견해(見解)에는 포용력(包容力)이 없는 것이며,

세 번째는 겉으로 겸손(謙遜)함을 가장 (假裝)하면서 마음속에서는 욕심(慾心)이 가득한 위선적(僞善的)
탐욕(貪慾)
스러움이며,

네 번째는 평생(平生)토록 학문에 종사(從事)하고 있지만 결 국(結局)바른 목적지에도달하지못하는

양상이다.

바로 이점에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初)에 활동(活動)하던 실학자(實學者)로서 다산이 바라보는
향원이란 그 시대에 세력(勢力)의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는 위선자인 도학자(道學者)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겠다. (요한다산정양용저, 금장태역‚"인과예’' 81- 82 면)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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